1. 에두아르 마네 [ Edouard Manet, 1832~1883 ]
모더니즘의 창시자며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네는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법무성의 고급 관리였던 아버지는 마네가 화가가 되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으며, 자신처럼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다. 어린 마네는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했으며 법률가까지는 아니었으나 해군 장교가 되는 조건으로 아버지와 타협했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재응시를 하였지만 역시나 낙방하였다. 결국 완고했던 아버지도 손을 들고 이때부터 마네는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마네는 삼촌 샤를 푸르니에와 어린 시절의 친구인 앙토냉 프루스트로부터 격려를 받아, 당시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화가였던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 등록한다. 마네는 자신의 미술 기법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종종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가, 그곳에서 옛 거장들의 그림들을 모방하곤 했다. 그러나 1858년에 그의 첫 살롱전 출품작인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은 입상하지 못한다. 거듭되는 낙선에도 불구하고 살롱전에 계속 출품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그의 작품들에 대한 혹평과 조소뿐이었다. 평소 게으른 한량 기질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마네는 입상으로 단번에 신뢰를 만회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네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풀밭 위의 식사>와 <올랭피아>로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만 고명한 화가가 되지는 못했다. 마네는 기성 화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아웃사이더 화가였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또한 그는 시인 샤를 보들레르, 소설가 에밀 졸라 등이 속해 있던 지식인들의 모임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마흔 중반에 접어들면서 마네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져갔으며, 특히 왼쪽 다리에서 시작된 류머티즘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갈 만큼 심각했다.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1881년 마네는 평생을 고대하던 살롱전에서 2등으로 입상한다. 이로써 심사 없이도 살롱전에 출품할 자격이 주어졌지만 1883년 악화된 류머티즘과 매독으로 사망한다.
인상주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마네는 실제로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인상주의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단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마네는 권위 있는 기성의 미술계인 살롱전에서 인정을 받고 성공을 거두기만을 희망했다.
2. 작품 및 해석
1. 풀밭 위의 식사, 캔버스 유채, 1863
벌거벗은 한 여인과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두 신사 이렇게 세 사람이 풀밭 위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속옷 차림으로 물놀이를 하는 또 한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마네는 역사화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구도를 적용하면서도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의 저속하고 음탕하기까지 한 단면을 대담하게 묘사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후원을 받고 있던 기성 화단이 이 그림을 가만둘 리 없었다. 여기저기서 혹평이 쏟아져 나왔고, 그중에는 회화의 기본기도 갖춰지지 않는 그림이라는 혹평까지 나돌았다. 거기다 이 그림은 표절 혐의까지 휘말렸다. 이런저런 풍문이 퍼지자 전시회를 개최했던 나폴레옹 3세까지도 이 그림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으며 심지어 왕비는 전시회를 둘러보다가 이 그림 앞에서 등을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 평론가들은 <풀밭 위의 식사>를 두고 마네의 최고 역작이자 인상주의의 포문을 알린 근대 회화의 이정표라는 찬사를 보냈다. 마네는 이 그림을 통해 햇빛으로 색이 어떻게 바뀌고 또 주변 사물 색깔에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실험을 하였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여 나체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밝고 경쾌한 효과에 주목했다. 녹색을 주조로 하고 여기에 흰색의 점을 칠해서 전체적으로 색조의 조화를 꾀하였다.
2. 올랭피아, 캔버스에유채, 1863
1865년 파리 살롱전에서 처음 선보인 마네의 <올랭피아>는 비평가들이 여러 차례 시체에 비유하며 화가와 그의 작품을 맹렬히 비난했다. 작품의 주제는 수세기 동안 서양미술에서 다루어졌던 평범한 것이었으나, 관람자들은 마네의 왜곡된 해석에 충격을 받았다. 만일 마네가 매춘부가 아닌 비너스라는 신화의 주인공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면 이 그림은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매춘부를 모델로 하면 완전히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구를 모델로 했는가에 따라 고급스러운 명화가 될 수도 저속한 음탕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림 속 모델은 최음제의 효과가 있는 난초꽃을 머리에 꽂고 있고, 순결을 파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 한쪽 슬리퍼만 간당간당하게 발끝에 걸치고 있다. 또한 뻔뻔하게 관람자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로써 남자 관람자들은 성욕을 채우기 위해 매춘부를 찾아온 손님이 되고 만다. 당시 많은 남자들을 불편하게 만든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꽃을 들고 있는 흑인 노예도 놓칠 수 없는 상징이다. 마네는 왕족과 귀족, 성직자들의 계급성에 반기를 든 부르주아들이 돈을 주고 흑인 노예를 사들이는 또 다른 계급주의적 형태를 꼬집었다. 올랭피아라는 이름의 매춘부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흑인 노예는 숨기고 싶지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인 것이다.
3. 베르테 모리조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872
마네는 1868년 팡탱 라투르의 소개로 베르테 모리조를 처음 만났다. 당시 이 젊은 여인은 그림을 배우고 있었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옛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곤 했다. 모리조는 마네를 만난 후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으며, 1876년에 마네의 막내 동생과 결혼했다. 그녀는 마네를 위해 여러 차례 단독 모델이 되어 주었고, 어떤 때에는 오르세 미술관의 걸작 《발코니》을 위해 다른 모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마네는 깊이 있는 시선을 머금은 섬세하고 각진 얼굴의 모델이 가진 색다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감싼 검은색은 그녀의 얼굴과 눈을 화사하게 빛나게 한다. 이 초상화는 마네가 그녀를 모델로 그린 그림 중에서 말년 작품에 해당한다.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아도 그 형태가 짐작되는 장식적인 의상의 실루엣이 밝은 색 배경 위로 낯설게 드러나 있다. 역광에 해당하는 측면 채광을 사용하여 윤곽을 뚜렷하게 살림으로써 모델의 존재감을 강조하였다.
4. 마네의 막장 가족사
사회적 지위가 높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했던 마네의 아버지는 마네가 17세, 그의 동생 외젠이 16세 일 때 19세의 네덜란드인 수잔 린호프라는 여자를 피아노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집안에 들였다. 한창의 청춘기였던 그들은 가볍고 쉽게 사랑에 불타올랐고 마네와 수잔은 금세 연인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동생 외젠도 마네 몰래 수잔과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삼각관계는 큰 사건 없이 조용히 유지되나 싶었지만 수잔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수잔은 그들의 삼각관계와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마네의 집을 나와 따로 집을 구해 아이를 낳았다. 마네는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하는 듯했고, 동생 외젠은 입을 다물었다. 마네는 수잔과 동거를 시작했고, 수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자신의 성을 붙이려 했으나 수잔이 이를 반대했다. 대신 수잔은 아들에게 자신의 성을 붙여주었다. 아마도 수잔은 그 아이의 진짜 아버지를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수잔은 네덜란드인으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파리까지 가정교사를 왔던 이유는 아마도 마네의 아버지였던 오귀스트의 ‘정부’ 일지도 모른다. 마네와 수잔의 결혼발표도 그의 아버지 오귀스트가 매독으로 사망한 후에 이뤄진 것으로 보아 그렇게 추측된다.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정부를 두는 것이 크게 죄를 짓는 일이 아니었다. 마네 역시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여성편력이 심했다. 수잔과의 비밀연애 끝에 결혼까지 한 상태였으나 마네에게는 또 다른 연인이 있었다. 베르테 모리조라는 인물로 마네의 동료였다. 마네가 동생 외젠에게 모리조를 소개해주면서 그들의 관계는 정리되었고, 모리조와 외젠은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모리조의 마음은 마네에게 향해있었다. 마네가 사망한 후에도 그녀는 마네의 전시를 기획했고, 경매에서 팔리지 않는 마네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사들여 그에 대한 명성을 지키려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미술관에 간 봉자] - 1억 4천만원짜리 바나나 '마우리치오 카텔란'
[미술관에 간 봉자] - 예술은 미친 짓이다 [ 살바도르 달리 ]
'미술관에 간 봉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억 4천만원짜리 바나나 '마우리치오 카텔란' (0) | 2019.12.09 |
---|---|
전시소개《보통의 거짓말 Ordinary Lie》 (0) | 2019.12.07 |
예술은 미친 짓이다 [ 살바도르 달리 ] (0) | 2019.11.05 |
죽음의 공포로 절규하며 평생을 살았던 [ 뭉크 ] (0) | 2019.10.28 |
자화상으로 보는 화가들 (0) | 2019.10.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