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관에 간 봉자

예술은 미친 짓이다 [ 살바도르 달리 ]

by stella lee 2019. 11. 5.

 1. 살바도르 달리 [ Salvador Dali, 1904~1989 ]

 

초현실주의(superrealism)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다루는 문학, 철학, 그리고 예술운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무의식을 탐구한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를 떠올릴 때 커다랗게 뜬 눈에 번뜩이는 광기, 꼬리가 길게 올라간 콧수염과 기괴한 머리를 한 모습일 것입니다.

달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루냐 동북부의 소도시 피게라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달리가 태어나기 전, 그의 형은 7살의 나이로 뇌막염에 걸려 죽게 되는데, 3년 후 달리가 태어나자 부모는 그를 형의 환생으로 여겨 죽은 형과 똑같은 이름을 붙이고 그에게서 형의 모습을 찾으며 늘 비교했습니다. 이는 달리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안겼고 죄책감과 강박증, 편집증, 부모에 대한 반발 의식, 정신분열의 증상인 이중성 혹은 다중성의 특징을 갖게 했습니다. 결국 "나는 결코 죽은 형은 아니며 살아있는 동생이라는 것을 항시 증명하고 싶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달리는 형이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관심받길 원했고, 그 열망을 온갖 기상천외한 일탈로 드러냈습니다.

자신을 흰 망토를 두른 왕이라 생각해 세발자전거를 탄 여자아이를 다리 아래로 굴려버리고, 친절한 늙은 의사의 코를 후려치고, 몸에 있는 점을 벌레라 여겨 면도칼로 떼어내고, 염소똥으로 직접 만든 향수를 뿌리고 다녔으며, 국제적인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잠수복을 입고 등장하고, 세상을 뒤엎겠다며 40m 길이의 빵을 구웠으며, 그의 이런 기행들은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마저 고개를 젓게 했습니다

 

 

그는 17살에 마드리드의 산페르디난드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학창 시절,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정물화로 그리는 수업시간에 성모 마리아 대신 저울을 그려 주위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자기 자신이 세기의 천재라고 확신하고 있는 달리는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저울로 그렸고, 그 그림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있는 교수에게 “선생님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울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왕립 미술학교에서의 파행적인 행동으로 정학 처분, 반정부 활동 혐의로 감옥생활도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지내다가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됩니다. 미술사 과목의 답안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서전에 ‘심사위 원보다 내가 더 완벽하게 답안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출을 거부했다’고 써놓았습니다. 이런 몇몇 사건들로 인해 달리는 한평생 일상생활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달리를 이해하고 감싸 안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 갈라였습니다. 달리가 갈라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그녀는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고, 10년 연상의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갈라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달리는 막무가내로 그녀에게 매달렸고 결국 갈라는 남편과 이혼하고 달리와 재혼하게 됩니다. 달리가 화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갈라의 힘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현실에 스며들지 못하는 이 천재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달리의 천재성을 이미 오래전에 알아본 갈라는 그가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돌봅니다. 달리는 그림 말고도 에세이, 자서전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책 출간 역시 갈라의 아이디어였으며 그녀는 예술가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74년에는 고국 스페인에 ‘달리 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하고, 1978년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첫 전시회를 열기도 합니다. 같은 해 프랑스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리게 됩니다. 달리는 말년으로 갈수록 아내 갈라 덕에 많은 현실적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달리를 남겨두고 89세로 갈라가 세상을 떠납니다. 아내가 죽은 뒤로 달리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칩거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7년 가까이 쓸쓸하게 지낸 달리는 1989년 여든네 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달리는 고흐나 고갱처럼 죽고 나서야 사람들의 관심과 그들 작품의 진가를 드러난 것과는 다르게 살아생전에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 부와 명예를 얻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하면서도 그 뒤에는 항상 ‘달리의 예술은 미친 짓이다’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2. 작품 및 해석 

 1. 구운 베이컨과 부드러운 자화상, 1941

 

< 구운 베이컨과 부드러운 자화상, 1941 >

초현실주의 화가의 자화상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달리의 자화상입니다. 나무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얼굴은 일그러져있고 아래로 부드럽게 녹아 흐르며, 그 아래에는 구운 베이컨 한 조각이 놓여있습니다.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 작품은 언뜻 그림만 봐서는 자화상이라고 부르기엔 매우 곤란합니다. 그림 하단에는 ‘SOFT SELF PORTRAIT’(부드러운 자화상)이라는 활자가 새겨져 있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이 달리의 자화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건  바로 ‘콧수염’이 아닐까 합니다.

 

 

 2.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

흐물흐물한 시계 혹은 녹아내리는 시계로 잘 알려진 <기억의 지속>은 20세기 초 미국과 유럽 미술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달리를 초현실주의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입니다.  달리는 그림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변형된 사물을 마치 실물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게 그렸으며, 죽음이 휩쓸고 간 것 같은 괴기스러운 풍경은 부드럽게 녹아서 흘러내리는 시계와 강렬한 대조를 이룹니다. 흐물흐물한 치즈를 연상시키는, 녹아내리는 시계는 측정된 시간의 엄밀함을 조롱합니다. 시계는 정확성의 상징인데 시계가 이처럼 흐물흐물하다면 시간의 흐름을 정확히 잴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늘어진 모습도 제 각각이다 보니 시계마다 시간이 따로 흐를 것만 같습니다. 이런 이미지로 인해 비평가에 따라서는 이 그림을 시간의 상대성을 논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리 스스로가 고백했듯, 그는 카망베르 치즈를 맛본 이후의 환각에서 영감을 얻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3. 츄파춥스 로고, 1969

 

< 츄파춥스 로고, 1969 >

"나는 천재이다", "나는 세상의 배꼽이다", "내가 피카소보다 100배 낫다"라고 떠들어댔던 달리.  회화를 비롯해 조각, 가구, 향수, 광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는 많은 분야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몽테뉴의 <수상록>,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 유명 작가들의 책에 삽화를 그렸으며, 소설과 발레 대본을 쓰고 영화 제작에도 열정을 기울였습니다. 의외의 작품도 있는데, 달리의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막대사탕의 대명사 츄파춥스의 로고입니다.

츄파춥스의 창업자 엔리크 베르나트(Enrich Bernat)는 처음 막대사탕을 고안한 인물입니다. 사탕을 가장 많이 먹는 어린아이들이 종이에 쌓인 사탕을 먹기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사탕을 먹기 좋게 막대에 꽂아 팔기 시작한 게 롤리팝의 탄생입니다. 롤리팝은 엄청난 속도로 팔려나갔지만, 베르나트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코카콜라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로고를 만들고 싶어 했고, 1969년 베르나트는 자신의 친구인 달리를 찾아가 커 이런 고민을 털어놓게 됩니다. 달리는 그 자리에서 즉석에서 로고를 만들어냈습니다. 데이지 꽃 모양을 그린 뒤 "노란 계열 바탕에 눈에 잘 띄게 두꺼운 폰트, 포장을 할 때는 로고가 사탕 꼭대기에 올 수 있도록 하라"는 조언도 더하기도 했습니다.  츄파춥스는 달리가 만든 로고로 포장을 바꾼 후 5년 만에 30만 개 매장에서 사탕이 팔리며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참고로 지금의 로고는 달리의 초기 디자인에서 폰트와 색감을 수정한 것입니다.

 

[미술관에 간 봉자] - 고통 속에 살다간 예술가들

[미술관에 간 봉자] - 자화상으로 보는 화가들

[미술관에 간 봉자] - 죽음의 공포로 절규하며 평생을 살았던 [ 뭉크 ]

[미술관에 간 봉자] - 인상주의의 아버지 [ 에두아르 마네 ]

[미술관에 간 봉자] - 1억 4천만원짜리 바나나 '마우리치오 카텔란'

반응형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