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관에 간 봉자

죽음의 공포로 절규하며 평생을 살았던 [ 뭉크 ]

by stella lee 2019. 10. 28.

  1. 에드바르 뭉크 [ Edvard Munch, 1863~1944 ]

 

에드바르 뭉크 [ Edvard Munch, 1863~1944 ]

1863년 노르웨이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주교, 시인, 사학자, 화가 등의 인재를 배출한 명문가 출신이었다. 이듬해인 1864년 그의 가족은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빈민지역에서 의사로 일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다 보니 생활은 늘 궁핍했다.

뭉크의 어머니는 뭉크가 5살 때 결핵으로 사망했고, 그로부터 9년 후에 누나 역시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여동생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아버지는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뭉크가 파리에서 살았던 1889년에 사망했다. 그의 남동생도 1895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뭉크 역시 병약하여 늘 질병이 따라다녔다. 가족의 죽음과 아버지의 폭력에서 생긴 불안정한 정서는 뭉크를 평생 따라다녔고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뭉크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예술가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아버지의 반대로 오슬로에 있는 기술대학에 들어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잦은 병치레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1881년 왕립 미술공예학교에 입학한 그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자연주의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의 문하에서 프랑스 인상주의를 배웠다. 그리고 1885년 파리를 여행하던 중 고흐와 고갱, 앙리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는 뭉크가 예술적 지향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1889년에 연 개인전이 크게 성공하면서 정부로부터 프랑스에서 3년간 공부할 수 있는 지원을 받게 된다. 정식 화가가 되면서 ‘생의 프리즈 - 삶, 사랑, 죽음의 시’라는 연작 시리즈가 호평을 받아 많은 곳에서 전시 요청을 받게 된다.

 그러나 평생을 괴롭혀온 뭉크의 신경쇠약과 공황장애는 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매사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말년으로 갈수록 그는 사람들을 피해 그림에만 전념했다. 살아생전에 뭉크가 겪었던, 정신적 고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머지않아 세상을 등질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실제로 뭉크의 내면은 온통 죽음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오직 죽음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뭉크는 같은 시대에 활동한 다른 화가들에 비한다면 그래도 제법 장수한 화가로 꼽힌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그렸지만 사는 것 못지않게 죽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가 보다

 

 

  2. 뭉크의 작품 및 해석 

 

 1.<절규>, 캔버스에 유채, 1893

 

<절규>, 캔버스에 유채, 1893

<절규>는 뭉크의 아픈 기억과 내면 깊이 침잠된 공포를 그린 것이다. 그림의 배경은 오슬로의 구불구불한 피오르드 해안선이다. 물결처럼 요동치는 붉은색과 파란색의 강렬한 대비는 당시 신경쇠약과 공황장애로 극도로 불안한 화가의 정신상태를 그림으로 담아낸 것이다. 

뭉크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해질 무렵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변했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의 극도의 피로를 느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난간에 기대섰다. 검붉은 피오드르 해안 위로 불의 혀가 뻗어 나왔다. 두려움에 떨며 뒤쳐진 나를 남겨두고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다. 그때 나는 거대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절규를 들었다."

 

 

 

 2.< 팔뼈가 있는 자화상 >, 석판화, 1895

 

< 팔뼈가 있는 자화상 >, 석판화, 1895

화가의 두상만 표현된 이색적인 자화상이다. 바탕도 온통 암흑뿐이다. 그리고 그림 하단에 있는 팔뼈가 매우 인상적이다. 뭉크는 왜 팔뼈를 그려 넣은 것일까? 구도상 이 팔뼈는 화가 본인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추론이다. 뭉크는 자신의 존재를 몸은 이미 죽어서 뼈만 남아있고, 영혼만 살아있는 상태로 표현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지만 영혼은 금방 사라지지 않고 한동안 이승을 떠돌기도 한다는 속설을 담아낸 것 같다. 

 

 

 3.<마돈나>, 채색 석판화, 1894

 

<마돈나>, 채색 석판화, 1894

이 작품에서 뭉크는 종교적 이미지인 성모 마리아를 소녀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성적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묘사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태생적 두려움을 담아냈다. 젊은 시절 뭉크는 몇 번의 연애를 경험했고, 그 대상이 유부녀이거나 사교계의 여자들이었고 대부분 불행하게 끝나고 만다. 이로 인해 뭉크는 여성에 대해 심한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 급기야 오슬로에서 사귄 툴라 라르센이라는 여성은 뭉크의 절망감을 극단으로 치닫게 해 준다. 당시 뭉크를 향한 툴라의 집착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는데, 급기야 툴라는 결별을 선언한 뭉크를 불러내 권총으로 뭉크의 손을 쏘는 참사를 저지른다. 

 

[미술관에 간 봉자] - 1억 4천만원짜리 바나나 '마우리치오 카텔란'

[미술관에 간 봉자] - 인상주의의 아버지 [ 에두아르 마네 ]

[미술관에 간 봉자] - 예술은 미친 짓이다 [ 살바도르 달리 ]

[미술관에 간 봉자] - 자화상으로 보는 화가들

[미술관에 간 봉자] - 고통 속에 살다간 예술가들

반응형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

댓글